(http://translatin.snu.ac.kr/translatin/1206/), Vol. 20, june 2012, pages 115-23
오리엔탈리즘과 동양:
포르투갈·스페인어권 간 남-남 대화에 대한 연구기획
이그나시오 로페스 칼보
나는 이 강연을 통해1) 2006년 시작되
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협동연구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주와 포르투 갈·스페인어권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연구기 획이다. 이 기획은 2006년 4월 <오리엔탈 리즘과 미주에서의 중국인 이산>이라는 학
제적인
국제 학술회의로 시작되었다. 오리 엔탈리즘과 중국의 관계를 연구하려던 최
초의
생각은 2009년에는 아랍과 아시아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기획으로 확장되어, 동년 4월 <동양은 서양을 읽고 서양은 동
양을 읽는다: 서구에서의 근동과 극동>이라는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제
3회 학술회의는 <미주와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양적인 것’(Oriental)의
이 미지>라는 제목으로
2011년 4월 다시 열렸다. 제4회 학술회의는 <미주와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양과 ‘동양적인 것’의
재현>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3월 모로코 페스 시에서 열렸다.2)
이 네 차례 학술회의에서 개진된 정보들을 확산시키기 위해, 나는 각
Publishing)에서 편찬한 세 권의 책 서문에 담겨 있다.
2) 이 글에서 ‘Oriente’는‘동양’으로, ‘pos(t)-’는 ‘후-’로, ‘des-’는 ‘탈-’로, ‘pluri-’는
‘다수-’로, ‘hegemónico’는 ‘패권적’으로, ‘trans-’는 ‘통(通)-’
혹은 ‘초-’로 번역하였 다.—옮긴이
각의 학술회의에서 우수한 발표문들을 골라
그 최종본들을 세
권의 책으
로 엮었다. 라틴아메리카와 그 밖의 지역의
대안적
오리엔탈리즘 (2007), 주변부의 다른 주변부 읽기: 미주와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양적 인 것’ 알기(2009), 주변부의 통근대성들: 포르투갈·스페인어권과‘동양’ 간의 남-남 대화(2012)가 그것이며, 모두 캠브리지 스칼라스 출판사를 통해 오프라인 서적과
e북으로 출간되었다. 이 세 권의 편저를 보완하기 위해 나는 공동 편저자로 평화를 위한 길들: 스페인어로 된 이스라엘 문
학과 아랍 문학도 편찬하여 2007년 코레히도르 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스페인인어로 작품을 쓴 아랍과 이스라엘 작가들의 단편과 시가
담긴 책 이다.
이 책들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2011년 동료인 크리스티 안 리치(Cristián Ricci)와 함께 학제적 성격의 인터넷 학술지를 창간했 다. 학술지 이름은《통근대성: 포르투갈·스페인어권의 주변부적 문화생 산》이며,3) 포르투갈·스페인어권과 미국 라티노의 주변부적인 문학적·문화 적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학술지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e스 칼라십이 발간하고 있으며,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민족들 간의 문
화적인
남-남 관계 연구를 증진시키고 있다. 비록 정전(正典)이 아닌 작 품들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후식민적, 탈식민적인 시각들로 정전을 재검토하는 글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엔리케 두셀과 월터 미뇰로 같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필자들이 이 학술지에 글을 실었다.
내가 조직한 학술대회의 발표 원고들 혹은 학술지《통근대성》이나 캠 브리지 스칼라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에 실린
글들 중에서 많은
글이 포르투갈·스페인어권과 라티노의 문화적 생산물과 소위 동양, 즉 아랍과 아시아의 문화적 생산물 사이의 비판적 대화에 대해 연구한다. 학술지와
막 발간된 연구서 제목에 사용한 ‘통
근대성’이라는 용어는 아르헨티나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담론에서 빌려온 것으로, 패권적이고 단일하고 전 지구화된(혹은 미국화된) 하나의 문화로
동질화되기를 거부하는 통근 대적 다수
세계(pluriverso)를 주장
한다.
이 통근대적 다수 세계에는 유 럽의 세계관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 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후식민주의적 세계관도 포함된다. 학술지 《통근대 성》이나 캠브리지 스칼라스 출판사에 서 출간한 책들의 많은 연구에서 우
리는 유럽인의 문화적 타자들이(주변부 국가들과 옛 식민지들의 타자들) 중심 메트로폴리스의 중재 없이도 상호문화적인 대륙간 대화 통로를 구축 했음을
볼 수 있다. 두셀이 비유적으로 설명하듯이, “거대한 메가폴리스 들은 보통 시내와 외곽을 잇는 지하철이 있다. 하지만 외곽들끼리의 연결
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와 유사한 일이 상호문화적 대화에 일어난 다.”(Dussel, 2005: 18) 그렇다면 외곽들끼리 연결되지
않는 모델은 피해 야 한다. 남-남 대화는 과거의 (패권적이고 유럽중심적인) 메트로폴리스 와 식민지들과의 대화보다 더 균형적인 대화를 지향한다. 두셀의 용어는 또한 근대성을 유럽만의 현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두셀은 항상 비판적이고 윤리적 시각에서 비서구 지식들 을 끌어들이면서 근대성과 후근대성의 개념들을 초월(그리고 극복)하고자 한다. 두셀의 설명처럼 (한때는 중심부 문화였던) 다른 많은 주변부 문화 가 근대성에 공헌했다.
“근대성의 긍정적인 순간들을 취하는(하지만 다른 천년의 문화들의 여러 가지 기준의 평가를 거친 뒤에) 미래의 통근대적
문화는 풍요로운 다수 세계성(pluriversidad)을 지닐 것이고, 엄연히 존재
하는 불균형을 분명하게 고려하는 진정한 상호문화적 대화의 열매가 될 것이다.”(Dussel, 2005: 17)
학술지《통근대성》과 캠브리지 스칼라스 출판사의 책들을 통해 발표 된 연구들은 소위 주변부 민족들의 바로
이러한
탈식민적 노력과 문화적 저항에
집중하고 있다. 가령 여러 글에서 주변주적, 식민적 주체들이 그
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적으로 차별 당하는 다른
주체들에 대해 지니고 있 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산과 경계의 비판적 사유와, 상호문화적 접촉이 일어나는 지대들의 일상적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글들은 중심의 패권적, 서구적인 담론은 물론이고 주변부의 식민화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에게 나타나는 반향을 문제시한다.
두셀에 따르면 이 통보편적 (transversal)이고 통근대적 대화가 “보편적인 후식민 문화들의 상호 해
방”(Dussel, 2005: 15)을 창출할 것이다. 그러나 라몬 그로스포겔이 상기 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지식은 늘 어느 곳엔가 위치해 있다(situado). 우 리는 권력의 계서적 구조 내의 어느 위치에서인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Grosfoguel, 2011: 4).
우리의 여러 차례 학술회의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최근 영토를 확장하 고 있다. 아마도 두 차례의 걸프 전쟁, 유럽과 미국에서 알카에다가 주도 한 테러,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새로운 지정학적·군사적· 경제적 지위 등으로 인해 서구와 이슬람 국가들 사이 혹은 동과 서 사이 의 점증하는 악감정과 원한 때문일 것이다. 레이 초우는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연구 사이의 계보적 유사성에 대한 연구인『이상주의 이후의 윤리라 는 저서에서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미국의 최근
문화연구의 네 가지
주요 분석경향 중
하나라고 말한다. 초우가 지적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계 미 국인 에드워드 W. 사이드(1935~2003)의 저서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중요한 연구서인 오리엔탈리즘(1978)은 실질적으로는 실현 가능한 대안 들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고, 비서구 타자가 어떻게 자신만의 문화를 가
질 수 있고 또 진정한 대항 세력이 될 수 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초
우는 문화적 타자들에 대한 정형화된 판단(juicios estereotípicos), 잘못 된 인식, 재현에 잠재적으로 혹은 명백하게 표출되곤 하는 인종주의와 성 차별에 대한 대안적 연구를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사이드의 연 구의 교훈인 ‘반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순한 틀을 넘어서는 상호문화적 교
환에
대한 대안적 사유들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정된 정체성에 끊 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고정적이지 않은 정체성을 넘어서서 무엇을 배
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Chow, 1998: 75)
우리 기획의 학제적 연구들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식민화된 나라들 자체에서 발생한 이국적 시선 을 오리엔탈리즘 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특별히 이상화시키는 법 없이 타자만을 이국적으로 제시하는 텍스트를 오리엔탈리즘적인 텍스
트로 간주할 수
있을까? 동양에 속하지 않는 문화와 민족들을 다룰 때 오 리엔탈리즘을 거론할 수
있을까?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득을 위해 어떻게 하면
전략적으로 자체적인 동양화(auto-orientalización)를 이용할 수 있
을까?
동양은 여전히 유럽과 서반구가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라틴아메리카에서 필리핀, 이베리아 반도에서 미국에 이르 는 광범위한 지역의 수많은 주제, 분과학문, 영역, 관점에서 이러한 연구 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이들 중 많은 연구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출발점으로 삼아 중동과 극동에 대한 서구의
상상력을 검토하고 있다. 사이드의 논지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리 엔탈리즘이 여전히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연구기획의 수많은 글이 동양의 부패와 전제주의, 문화적 열등함, 동양 특유의 수동 성과 정태(靜態), 관능적인 후궁과 첩에 둘러싸인 음탕한 동양, 동질화된 아시아, 수많은 유형의 중국풍과
일본풍(chinoiseries y japonaiseries) 등의 정형화된 이국주의를
파헤친다. 어느 면에서 이 연구들은 사이드가 그토록 격렬하게 고발한 학술적 오류들을 바로잡으려는 시도 속에서 과거
의 환원주의적 시각, 즉 서구 식민기획을 정당화시키는 시각들에서 완전
히 탈피한 결과물을 산출하고 있다. 또 다른 글들은 미주와 스페인어권에 서 아랍계 혹은 아시아계에 대해서 혹은 이들의 문화적 생산을 직접 분석 하면서
동화, 인종주의, 이민, 초국가주의, 시민권, 망명, 정체성, 통문화 화, 혼종 등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다.
훌리아 A. 쿠시히안(Julia A. Kushigian)이 설명하는 것처럼, 스페인 어권 문학 전통에서 오리엔탈리즘적 담론은 사이드가 기술한 것과는 아주 다른 경우가 많다(쿠시히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옥타비오 파스, 세베로
사르두의의 경우들을 인용한다). 하지만 우리 연구기획의 수많은
글에 나타나는 것처럼 패권적이고 비인간화되고 편견이 가득하고 인종주
의적인 또 다른 형태의 오랜 내력의 오리엔탈리즘이 스페인어권에도 존재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핵심 개념은 자체적인 동양화
와 옥시덴탈리즘(즉 오리엔탈리즘과 반대로 서구를 악마시하고 날조하는 현상이다).4) 이 두 가지는 문화적 교환과 해석에 대한 정보를 줄
뿐만 아 니라 새롭게 정의한다. 이와 병행되는 또 다른 현상은 ‘크리오요화’이다. 이는 지역문화(culturas locales)와 소수 종족들이 전
지구적 상호연결의 결과 수입되는 문화적 상품과 가공물(artefactos culturales)에 대해 상이 한 의미와 용법을 창조적으로 가미하는 과정이다(설사 지역문화와 소수 종족들이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 해도 말이다). 받아들이고 채택한 문화들 의 이질적 요소들을 선별하고 융합시키면서
‘크리오요화된’ 혼종적 정체성 과 산물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개념은 세방화 (glocalización)로 ‘보편적’이고
전 지구적인 산물, 개념, 규칙, 실천들이 지역문화에 의해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전유되어 새로운 혼종적 형식과 문화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동양의 지역들 혹은 차이나타운이나 도시의 소수민족 거주지 등에 대한 언급들이 직접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전의
독법에 의해 중재되고 있는 텍스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
로는 조작된 전유, 이국주의화, 본질주의화, 환원주의 등의 오리엔탈리즘 전통을 지속시키는 듯이 보여도, 그저 유희적·자기의식적·패러디적 접 근에 해당하거나, 상투어들의 표피적 탈코드화일 뿐인 텍스트와 영화들도
볼 수 있다. 이런 텍스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저자와 감독들이 작
품 처음부터 희화적인 낯설게 하기(desfamilización caricaturesca),
‘전 형적인 동양적 요소’들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로 가득한 낯설게 하기가
‘동양’ 현실과 거의, 혹은 전혀 상관이 없는 허구적 오리엔탈리즘이라 는 점을 명백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가령 이러한 재현들은 중국 연구의 산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핍진성을 거부하는 유희적 시각 에서 동양을 상상한다. 그리하여 식민지배를 경험한 민족들 간의 역동적 인 남-남 관계에 위치한 지식의 반향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 기획의 여러 글은 또한 작가, 영화 제작자, 음악인들의 아시아 문화 예찬과 모방에 대해서 연구한다. 하이쿠를 모방한 라틴아메리카 작
가들,
홍콩 무술영화를 모방한 칠레 영화들에 대한 연구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문화적 차용에서 아시아의 문화적 산물을 낭만화하고, 물신화하 고, 이국화시키는 대신(물론 가끔은 아시아의 문화적 산물을 상품화시키 지만), 아시아의 인상적인 문화적 성취를 존중하면서, 그리고 가끔은 경 의를 표하면서 각자 지역의 전통에 가미한다. 내 생각에는 가령 멕시코 시인 후안 호세 타블라다(Juan José Tablada, 1871~1945)의 하이쿠 모
방을
‘패권적 억압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반대로 그의 행 위는 동양의 타자를
이해하고자 하는(통제하거나
조정하려는 것이 아니 라) 진지한 소망이다.
다른 글들에서 분석되고 있는 다른 문화적 가공물들은 세계화 효과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문화의 초국가적 수입과 수출은 물론 경제적·정 치적 발전의 영향을 받는다.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 혹은 정당 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전 지구적 단일문화화(소위 전 세계의 맥도널드화
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시장을 통해 점점 진행되는 중국
화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에 대한 두려움은 지역적 차원에서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회적·인종적 불안감을 표현한다. 소수 언어가 급속하게 소멸 되면서(어떤 경우에는 문화도 소멸되면서) 문화적 생존 본능이 문화적 충
돌 혹은 타자에 대한 매혹이나 배격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알려주고 있 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들 사이의 교섭은 이따금 불길하게도, 대단히 많
은 비판을
받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의 논지를 연상시킨다.
즉,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문명’이 일촉즉발의
국제정치의 동인으로 국가와 이념을 대체하고 있으며,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이 앞으로 무력 충돌의 근
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 말이다.
비록 사이드는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의 중동에 대한 동양적 인식과 정형화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우리 기획을 통해 발표된 대다수 연구는 소 위 제3세계라고 불리는 주변부, (17세기 중반 이후부터의 스페인과 포르 투갈 같은) 반주변부, 소외된 사회 그룹들 사이의 탈중심적 상호작용에 집중하고 있다. 가령 중국과 극동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에서 어떻게 상상되고 재현되는지를 고찰한다. 이러한 사회 그룹들과 주변부는 때로는 구 제국들의 메트로폴리스와
대립하거나 이들의 중재를 구하지만, 때로는 제1세계 혹은 패권적 사회 그룹의 개입을 피해 다른 주변부 민족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이를 통해 풍요로운 교환과 상호문화적 흐름을 창출한다. 사이드가 연구한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과
이러한 전 지구적인 문
화적 상호작용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비록 동양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환상이나 제국주의적 의식구조를 재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남-남 의 문화적·지적 교환에서는 스스로를 이상화시키는 자민족 중심적 과정 이나, 문화적·존재론적·인종적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을 탈중심화시키는, 디페쉬 차크라바티(Dipesh Chakrabarty)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유럽을 지방화시키는(provincializar)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중심-주변의 이분법을 허물고, 그 대신 구미 메
트로폴리스의 중재 없이도 상호작용하는 문화를 지닌 다수의 교체 가능한
중심들과 주변들을(múltiples e intercambiables centros
y periferias) 제안한다.
그리하여 우리 기획의 몇몇 글들은 유럽이 확고하게 중심이라는 관념
에 도전하면서 통근대적이고 상호문화적인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제안하고 있다. 유럽 중심적 패러다임은 근대성이라는 현상이 전적으로 유럽적인 것이고, 중세 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해 세계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를 비판하는 두셀은 하나의 세계체제 혹은 지구체제(sistema planetario)를 논하면서, 유럽도 오랜 세기 동안 주변부에 속했고(중심은 바그다드, 중국, 인도, 기타 문명이었다), 아메리카를 자신의 주변부로 편
입시키면서 중심으로 변모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셀은 주변부에서 출
현해서
서구 근대성을 초월하는 통근대적 해방을 거론한다. 그리고 근대 성에서
건질 만한 것은 복원하고 세계체제의 패권과 배제의 관행들은 억 제하는 주변부 해방기획, 즉
근대성이 거부해 온 기획을 제안한다.
이 강연에서 언급된 연구들은 남-남의 문화적이고 통근대적이고 상호
주변부적인 대화들의 반향으로, 과거 이런 대화들을 배제한 서구 근대성 을 넘어 자신만의 공간을 요구하고 있다.
[우석균 옮김]
Merced) 라틴아메리카문학 교수.
우석균 ―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U.S. copyright law prohibits reproduction of the articles on this site "for any purpose other than private study, scholarship, or research" (see Title 17, US Code for details). If you would like to copy or reprint these articles for other purposes, please contact the publisher to secure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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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entario:
Se me hace un poco cuesta arriba este texto, Igna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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